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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내집’ 1만 7,500호의 역설… ‘주거 사다리’인가, 또 다른 ‘유리천장’인가

  • 작성자 : 배재형
  • 작성일 : 2026-09-02 07: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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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내집’ 1만 7,500호의 역설… ‘주거 사다리’인가, 또 다른 ‘유리천장’인가

- 출산율 반등 견인한 파격적 실험, 그러나 10억 넘는 보증금과 대출 규제에 가로막힌 청년들

- 단순 임대를 넘어 ‘실질적 자산 형성’으로 이어지는 유연한 제도 보완 시급

서울시가 저출생 극복을 기치로 내건 장기전세주택Ⅱ ‘미리내집’을 2030년까지 1만 7,500호 추가 공급하겠다고 밝혔다. 2024년 7월 첫 도입 이후 이미 7,100여 호가 공급된 상황에서 매년 4,000호 안팎의 물량을 꾸준히 확충하겠다는 청사진이다. 과거 ‘시프트(SHift)’가 기출산 가구 중심이었다면, 미리내집은 무자녀 및 예비 신혼부부에게 선제적으로 문호를 열어 출산을 유도한다는 점에서 패러다임의 전환을 이뤄냈다.

성과 지표 또한 고무적이다. 입주 가구 대상 설문에서 응답자의 36.6%가 입주 후 자녀를 출산했고, 84.7%가 향후 출산 계획을 밝혔다. 2023년 0.55명까지 추락했던 서울의 합계출산율이 2025년 0.63명으로 2년 연속 반등한 데에는 안정적 주거 안전망이 일정 부분 기여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여기에 계약자의 90% 이상이 활용하며 765억 원 규모의 부담을 던 ‘보증금 분할납부제’와 다자녀 가구를 위한 ‘우선매수청구권’ 확대 등 수요자 맞춤형 미세조정도 돋보인다.

그러나 이 장밋빛 통계의 이면에는 씁쓸한 현실이 똬리를 틀고 있다. 바로 ‘금수저 신혼부부 전용 정책’이라는 비판이다.

가장 큰 걸림돌은 감당하기 힘든 전세 보증금의 벽이다. 선호도가 높은 강남권 핵심 단지의 경우 보증금이 10억 원을 훌쩍 넘는다. 일례로 서초구 래미안퍼스티지(전용 84㎡)의 보증금은 13억 8,000만 원대에 달한다. 시세 대비 저렴하다고는 하나, 사회초년생인 평범한 2030 신혼부부의 자력으로는 도저히 마련할 수 없는 액수다.

설상가상으로 금융 규제는 평범한 청년들의 진입로를 원천 봉쇄하고 있다. 강화된 대출 규제로 신혼부부 버팀목 전세대출 한도는 축소되었고, 보증금 4억 원을 초과하는 주택은 정책 대출 자체가 불가능하다. 결국 부모의 막강한 자금 지원이 없는 대다수 무주택 청년들에게 인기 지역 미리내집은 ‘그림의 떡’이자 상대적 박탈감을 안겨주는 또 다른 유리천장이 되고 말았다.

‘20년 후의 현실’ 또한 간과할 수 없는 뇌관이다. 최장 20년을 거주한 뒤 분양 전환 우선권을 받는다 한들, 20년 뒤 폭등해 있을 매입 자금을 평범한 월급쟁이가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에 대한 해답은 빠져 있다. 

자녀가 자라남에 따라 더 넓은 평형으로 이동할 수 있는 평형 교환 사다리나, 단계적으로 지분을 사들이는 ‘지분적립형 분양 방식’ 등 정교한 출구 전략이 동반되지 않는다면 임대 만기 시점에 또 다른 주거 난민을 양산할 위험이 크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현장을 찾아 배정 비율 상향(50%→70%)을 중앙정부에 건의하고 제도 개선을 약속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공급 물량이라는 ‘숫자 채우기’에만 매몰되어서는 정책의 진정성을 인정받기 어렵다.

미리내집이 진정한 ‘청년 주거 사다리’로 자리매김하려면 몇 가지 근본적인 궤도 수정이 필요하다.
첫째, 고액 보증금 단지에 대해 공공이 일부 지분을 공유하거나 장기 저리 금융을 연계하는 등 ‘금융 안전망의 차등 지원’이 결합되어야 한다.

둘째, 가족 구성원의 성장에 맞춘 주거 면적 이동권 보장과 지분적립형 분양 모델을 조속히 제도화해야 한다.

셋째, 서울시와 국토교통부가 머리를 맞대어 신혼부부 특별 공급에 대한 대출 규제 예외 조항을 신설해야 한다.

주거 안정이 곧 출산율의 열쇠라는 점은 이미 입증되었다. 이제는 ‘누가 이 열쇠를 쥘 수 있는가’에 대한 공정성의 질문에 답해야 할 때다. 부모의 자산 격차가 자녀의 주거 출발선을 규정하는 구조를 깨지 못한다면, 1만 7,500호라는 거대한 물량도 저출생의 거대한 파도를 막아내기엔 역부족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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