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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만족한 삶, 돈 아닌 자유-여유로 채워"'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 저자 하완

레이스에서 벗어나니 행복한 삶이 보여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 했다’. 제목이 다 했다, 아니 제목이 다 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네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뭐야?’ ‘네 멋대로 해라’ ‘힘내지 않아도 괜찮아’ ‘욜로(YOLO)’ ‘힐링(Healing)’... 마치 여러 해를 휩쓴 자기개발서 열풍에 반발하는 듯 그 대척점에 있는 메시지가 넘치는 시대다. 그래서 비록 제목이 유니크 하지만 뭐 그저 그런, 최근 트렌드에 편승한 책인 줄 알았다. 

심지어 베스트셀러다. 인터뷰를 위해 펼친 책에는 발간 한 달 남짓에 ‘5쇄’라고 적혀있었는데, 인터뷰가 진행된 7월 중순 현재 ‘9쇄’가 됐단다. 우와~. 비슷비슷한 콘셉트의 책이 난무(?)하는 시대지만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 했다’는 못 봤으면 못 봤지, 일단 제목을 보고 그냥 지나치긴 힘들다. 그 만큼 ‘힘이 센’ 강렬한 제목이다. 

“작년 6월에 처음 브런치(카카오가 운영하는 일종의 ‘작가 입문’ 블로그 포털)에 연재를 시작할 때 제목 때문에 고민을 많이 했었죠. 뭘로 해야 할까. 너무 지친 상태여서 ‘열심히 살지 말아 봐야겠다, 딱 1년만’ 이라는 생각을 했죠. 어쩌다 툭 생각이 났어요. 근데, 정말 제목이 책 판매에 큰 역할을 한 것 같긴 해요. 하하.”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 했다’의 저자 하완. 본인의 자조적 표현대로라면 ‘3류 일러스트레이터’였던. 물 하(河), 빨래할 완(浣), 하완(河浣). 성을 뗀 이름, 본명이다. 요즘 표현대로라면 ‘인소(인터넷소설) 주인공’ 이름처럼 흔치않으면서도 뭔가 ‘있어 보이는’(!) 이름이다. 책 내용에도 나와 있는 ‘나쁜’ 아버지가 아닌 할아버지가 (작명소에서) 지어주신 이름이다. 

 

“돈 안주는 데 처음으로 스스로 그려본 그림”

야매 득도 에세이. 이 책의 부제다. ‘속세의 옷을 벗으니 시원하구나’ 표지에 이 책의 화자(다름아닌 작가 자신)가 맨몸에 팬티만 입은 채 집구석 방바닥(으로 보이는 곳에)에 엎드려 더 없이 편안한 표정을 짓고 있다. 그야말로 ‘득도’의 경지다. 옆에는 갓 내린 커피와 맥주와 안주(마른 오징어)가 놓여있다.

“이 책이 나오게 된 시작, 같은 제목의 브런치에 올린 삽화가 돈 안주는 데 처음 그려본 그림이었어요.(웃음) 그 전엔 목적이 분명했거든요. 돈이요. 하하. 놀면서 ‘그래 내가 그림을 좋아하진 않지만 그림을 그릴 줄 아는 사람이다’ 뭐 이런 마음으로? 그 동안은 돈 받고 돈 때문에 그리는 그림이 재미 없었는데 처음으로 재밌는 그림 그려보면 안될까? 하는 생각으로, 아무런 댓가 없이 처음 그린 그림들이에요. 내가 재밌고 보는 사람도 재밌는 그림을 그려보자 하는 생각으로.”

작년 6월에 시작한 브런치가 처음부터 반응이 좋았던 건 아니다. 그러나 꾸준히 글과 그림을 올리자 다행히 한두 명씩 구독자가 늘고, 연재를 그리 오래 하지 않았는데도 출판사에서 연락이 왔다. 고민할 것도 없이 제일 먼저 연락 온 출판사와 계약을 했다. 근데 운이 좋았다, 처음 연락 온 출판사가 꽤 이름도 있고 규모도 큰 회사였던 것이다. 

벌써 ‘천기누설’을 하면 안 될 것 같지만 하완 작가는 ‘현재 스코어’ 두 번 째 책도 계약을 마친 상태라고 한다.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에 이은 또 다른 테마의 브런치 ‘정면돌파요? 전 측면이 좀 더 낫습니다만’의 내용을 담길 것이다. 역시 처음 연락 온 출판사(첫 책과 다른 회사다)를 선택했다. “너무 많은 출판사가 아니어도 됩니다, 딱 한 군데면 됩니다. 하하.” 정말 그렇다.

 

 

“고민하는 게 싫어 고민을 끊었다. 입사도 퇴사도 그렇게”

‘힘내지 않아도 괜찮아’라는 제목을 처음 봤을 때의 느낌이랄까. 얼핏 그랬다, 기자에겐. 혹은 박찬욱 감독의 가훈이라는 ‘아니면 말고’의 느낌? 이미 ‘네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뭐야’는 故 신해철이 일찍이 지난 세기말(1999)에 설파한 노래 제목이다. 

“남들보다 참 많이 뒤처진 인생이었죠. 애초에 집이 가난해서 상업고등학교를 간 것도 있고요. 재수를 할 때부터 미술학원에서 일을 하면서 그림을 그린 셈이에요. 3수도 아니고 4수를 해서 천신만고 끝에 원하던 대학에 들어갔는데 그게 절대로 ‘행복시작’이 아니더라고요. 대학 내내 학교생활보다 미술학원 알바를 더 열심히 했어요.”

미술학원에서 그림을 가르치는 것, 특히 입시미술 지도에 신물이 났다. ‘이 정도 밖에 못해?’ 하며 아이들을 다그치기 위해 폭언과 체벌까지 했던 시절이었다고 한다. 대학생활에 충실치 못했으니 취업준비가 제대로 됐을 리 없었다. 막막했지만 많이 지치기도 했다. 그리고 미술학원 아르바이트를 계속해온 덕에 약간의 돈도 있었다. 쉬자! 나 좀 쉴래. 지금 이 일 더 이상 못하겠고 ‘그림 빼고’ 진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자. 딱 1년 만 쉬면서. 

그랬는데 1년이 2년이 되고 3년이 됐다. 무슨 인기가수나 배우도 아닌데 ‘공백기’를 갖게 됐다. 소설 읽는 거 좋아하니까 소설가가 될까? 영화 좋아하니까 시나리오 쓰고 영화감독이 돼 볼까? 아니지, 이 정도로는 감히 내가 진짜로 강렬하게 좋아하는 일이라고 할 수 없지. 

“대학 졸업하고 3년 간 개고생만 했어요. 결국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없구나. 내 맘과 열정은 강렬함이 너무 약해서, 나 같은 사람은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고 강렬하게 뭔가를 하고 싶은 게 없는, 난 미지근한 사람이구나를 깨달았죠. 근데 빨리 자신이 하고 싶은 걸 찾고 그걸 강렬하게 열정적으로 할 수 있다면 정말 좋겠지만 꼭 그런 사람만 있는 건 아니니까. 이것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뜨뜻미지근한 거. 연애도 그랬어요. 첫눈에 반한 영혼의 상대? 뭐 이런 게 아니고 서서히 스며들며 좋아지더라고요. 꼭 뜨겁고 강렬한 것만 사랑은 아니니까.”

그런 차에 아는 선배의 소개로 대학 졸업 3년 만에 ‘취직’이란 걸 처음 하게 됐다. 디자인 회사였다. 그림 그리는 게 엄청 즐겁고 재밌는 건 아니었지만 처음 해보는 회사 생활이 나쁘지 않았다. 아, ‘공백기’에 인터넷에 올린 삽화를 보고 출판사에서 연락이 와 처음 ‘그림책’(책에서 제목을 굳이 밝히지 않겠다고 한)이라는 것도 내보고, 회사 생활과 함께 외부 외뢰 아르바이트도 병행하게 됐다. 

근데 병이 또 도졌다. 굳이 말하자면 일하기 싫은 병, 쉬고 싶은 병. ‘뭔가 재미있고 의미있는 일을 해야 하는 거 아냐’는 고민의 고민을 거듭하는 병... 6년 회사를 다녔는데 퇴사 위기가 한 두 번이 아니었고 몇 년 간 꼬리에 꼬리를 무는 고민으로 보냈던 것 같다. ‘그만 두고 프리랜서로 자리 잡고 일하자’ ‘프리랜서는 일거리가 들쭉날쭉 한 데 먹고 살 수 있겠어?’ ‘아냐, 이렇게 사느니 걍 그만둬야 겠어’ ‘너무 대책 없는 거 아냐?’...끊임없이 생각을 반복하면서.

“처음 회사 들어갈 때도 소위 공백기에 고민하는 게 너무 지겨워서 ‘그래 해보자’는 맘으로 했던 거고, 그만 둘 때도 진짜 고민하는 게 너무 지겨워 걍 딱 그만뒀어요. 누구한테도 의논하지 않고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냥 다녀도 됐는데 내가 왜 그랬지?’라는 생각도 들어요. 오히려 회사 다니면서 브런치 운영 하면 밤에 올려야 하니까 시간적으로 힘든 면은 있지만 마음은 훨씬 가벼웠을 거 같거든요. 근데 그때는 회사 때문에 못하는 거 포기하는 게 많은 것 같았어요. 그냥 가난하게 살면 한 1년은 게으르게 살 수 있겠다는 생각?” 

 

“책이 잘 돼서 한 1년 게으르게 사는 건 또 해결됐다”

“제가 회사 다닐 때 직장에 요구하고 바라는 게 너무 많았었나 봐요. 솔직히 일은 별로 안 힘들었어요. 근데 언젠가부터 매어있는 게 너무 답답하고 내가 하는 일이 가치 없다 느껴졌어요. 내가 욕심을 많이 부렸구나 하는 걸 나중에 알았어요. 그냥 생계유지만 할 수 있어도 일도 직장도 나름 가치있고 의미있는 건데.”

처음 회사 생활을 시작해 월급을 받고 감사하던 마음은 점점 희미해져갔다.

“처음엔 일하고 월급 받고 하는 게 너무 감사했어요. 월급 받아서 오리털 파카를 샀는데 ‘너무 좋다’고 일기에도 썼을 정도였어요.(웃음) 근데 사람이 간사해서 월급도 조금씩 올랐지만 돈이 감사하지 않더라고요. 나는 더 받아야 하는데, 하는 일이 너무 많은데... 그리고 이 일이 무슨 의미가 있어? 하면서 자꾸 남과 비교하게 되고 허무함, 열등감이 쌓이게 되더라고요.”

어릴 때부터 가난하게 자랐고 대학 내내 아르바이트 하며 힘겹게 스스로 학비를 충당했던 기억들 때문인지 하완 작가는 돈에 많이 사로잡혔었다고 했다. 

“돈이라는 가치로 끊임없이 저울질 하고 있었구나, 내가 하는 일도 돈으로 판단하고 가치 없다, 억울하다 느꼈구나 싶더라고요. 여태까지 열심히 살았는데 이룬 것도, 뭔가 딱 잡힌 것도 없고, 이렇게 열심히 살아서 뭐하나, 내가 노력 안해서 그런 건가 그런 생각들만 들고요. 근데 조금 더 깊이 생각해보고 시각을 바꿔보니까 노력 안해서 그런 것만도 아니고, 또 많은 걸 못 가진 게 억울해 할 만한 일도 아니더라고요. 레이스에서 벗어나니 그런 게 보였어요.”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 자포자기, 너무 힘들어 편하게 살고 싶다는 마음들이 다 합쳐져 브런치가, 지금의 책이 나오게 된 셈이다. 근데 처음엔 포기라 생각했던 게 포기가 아니었단다. 그런 순간들을 거치면서 채워지는 게 있었다고 작가는 말한다. 

“많은 걸 돈으로 채우고 싶었던 사람인데, 오히려 돈을 포기해버리고 자유롭게 시간으로 나를 채우니까 돈 부족한 게 보이지 않더라고요. ‘돈이 부족해서 자유롭지 못하고 이 모양이야’라고 생각했었는데, 자유로 가득 채우니 ‘돈이 부족한 게 아니고 이런 여유로운 삶이 부족했구나’ 느껴졌어요.”

정말 예상치 못하게 첫 책의 반응이 너무 좋아 뜻하지 않은 스케줄들(오늘 같은 인터뷰나 북토크, 강연들?)이 생겨 살짝 당황스럽기도 하지만, 아직까지 ‘시간으로 채운 느리고 게으른 일상’이 크게 달라지진 않았다고. 10년 간 지속된 여자친구와의 연애전선에도 이상은 없다. 

“책이 잘 돼서 그림 의뢰가 덜 들어와도 일을 덜 하게 돼도 확실히 맘이 좀 편해지는 건 있는 것 같아요. 우선 한 1년은 지금처럼 더 게으르게 살 수 있을 것 같아서 일단 그렇게 살고 그 이후의 일은 또 그 때 해결하는 것으로...”

책에 써준 저자 친필 사인의 문구는 ‘즐거운 대화, 즐거운 인생’이었다. 그렇지, 이거면 되는 거지.

 

사진=하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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