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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킹''기름진 멜로'의 진짜 요리사

'쿠킹 커뮤니케이터' 한희원 쿠킹앤 대표

 

셰프, 푸드스타일리스트, 먹방크리에이터에 이르기까지, ‘요리’ ‘음식’ ‘맛집’ ‘먹는 것’과 관련된 직업이 ‘핫’해진 지 한참이다. 먹는 것 싫어하는 사람, 관심 없는 사람 거의 없고, 특히 맛있는 것을 먹는 것은 물론이고, 먹는 것을 보는 것, 음식을 만들고 요리하는 것을 보는 것, 음식을 더 맛있어 보이게 연출하는 것까지 싹 다 ‘관심사’의 일부가 됐다.

그런 면에서 ‘쿠킹앤(Cooking&)’이라는 이름에 주목했다. ‘쿠킹 그리고...’ ‘쿠킹 플러스알파’? 아, ‘쿠킹 그 이상’이 적절하겠다. 이 브랜드를 이끄는 사람, 한희원 셰프를 만났다. 그는 요즘 윤제문 감독, 정성화-김고은 주연의 뮤지컬영화 ‘영웅’의 푸드 디렉터로 음식 장면(연회-식사 신 등) 촬영 기획-진행에 한창이다.

미술학도서 셰프로...佛 코르동블루서 양식 전공
 

 

따뜻하고 환한 미소가 인상적인 한희원 셰프는 동양화를 전공한 미술학도였다. 충분히 예상되는 수순이었다 해도 순수회화 전공자가 졸업 후 경제활동을 한다는 게 쉽지 않았다. 그러다 한 자기그릇 제조회사에서 테이블 데코레이션을 하게 됐다.

“그릇을 예쁘게 세팅하고 디스플레이 하는 일이 꽤 재미있었어요. 근데 그릇만 가지고 하다보니까 뭔가 좀 빈 껍데기 같은 느낌, 한계가 있을 것 같아서 ‘이 안에 채우는 걸 만들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요리를 배워야 하는데 ‘이왕 할 거면 제대로 정통으로 하자’ 싶어서 파리 코르동블루에서 양식을 공부하게 됐어요.”

원래 요리에 관심이 없거나 아예 낯설다면 쉽게 내릴 수 없는 결정, 도전이었을 것이다. 한 대표네는 종가집이어서 매달 제사가 있었다. 손님이 왔다하면 20~30명씩 오고 엄마, 외할머니 모두 요리는 물론, 손님상에 올라가는 장식까지 손수 만드셨다. 늘 잔칫집 같은 집안 분위기 속에서 시장 따라다니는 거 좋아하던 한 대표도 어느새 요리를 꽤 잘 하고 있었다고.

2년 반 파리에서 요리 공부를 하고 한국에 돌아왔지만 예상대로(!) 뭔가 준비되고 예정된 길은 없었고 경기도 구리에 파스타집을 열어 2년 간 운영했다. ‘성공적!’까지는 아니었어도 첫 창업에서 많은 걸 배웠다. 이후 뜻 맞는 사람들과 함께 ‘아동요리지도사과정’을 만들어 커리큘럼을 짜고 강사를 양성해 배출하기도 했다.

한 2년 원래 전공을 살려 갤러리 큐레이터로 일을 하기도 했지만 다시 길은 ‘요리 콘텐츠’였다. 주방기구제조사에서 요리 동영상도 만들고 회사 스튜디오에서 직장인 대상 강좌도 진행했다. 그러다 PR대행사를 운영하는 정동수 대표와 의기투합해 현재의 ‘쿠킹앤’ 브랜드를 만들었다.

‘요리로 소통하다’...‘쿠킹 커뮤니케이션’이라는 새 차원

PR전문가와 셰프의 만남? 언뜻 매칭이 잘 안 되지만 한 번 더 생각하면 정 대표와 한 셰프의 공통분모는 ‘커뮤니케이션’ 즉 ‘소통’이다. 정동수 대표는 ‘PR(Public Relation)’ 뜻 그대로 소통전문가였고, 한희원 셰프는 요리를 통해 사람들과 소통하고자 했다.

2013년 ‘쿠킹앤’ 브랜드를 출범시키고 다양한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쿠킹 커뮤니케이션’ 과정을 개설, 쿠킹을 통해 팀워크를 다지는 조직활성화 차원의 소통 프로그램을 주로 기업을 대상으로 진행했다. 새로운 직원교육 프로그램에 목말라 있는 많은 기업들이 이 과정에 호응을 보냈다. 지루하고 뻔하지 않은 신선한 교육을 찾던 ‘열린’ 기업들에게 딱 포착됐던 것. 준비할 게 많은 쿠킹 프로그램이었음에도 한 번에 500명을 대상으로 교육을 진행한 적도 있을 정도다.

“기업 대상 쿠핑 프로그램과 함께, 평소 요리에 소외된 사람들에게 요리의 즐거움을 알려주겠다는 취지로 어린이, 남성, 직장인들 대상으로 강좌도 열었어요. 다른 강습생들에 비해 남성들은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편이에요. 요리에 관심이 있어도 강좌 등록 자체부터 어려워하죠. 그래서 남성들을 대상으로 하는 강좌는 메카니즘도, 교육 스타일도 좀 달라요.”

남성들을 위한 맞춤형 요리교실을 만들자 신청자들은 소위 사회적 지위도 높고 연령대도 높은 분들이 많았다. 젊은 사람들도 관심은 있으나 상대적으로 돈과 시간 여유가 많지 않았던 것.

“나이 드시고 어느 정도 위치에 계신 분들이 자신에게 맞는 취미, 힐링이 필요한 프로그램을 찾고 계셨어요. 요리를 통해 힐링을 얻고, 가정으로 돌아갈 시간이 가까워짐에 따라 뭔가 가족들에게 어필할 ‘필살기’ 같은 걸 필요로 하셨죠. 요리를 하면 가정 분위기가 확 좋아지고 소통도 원활해지면서 가정에서 자신의 입지를 찾아갔다는 분들이 많았어요.”

이렇게 다양한 쿠킹 커뮤니케이션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또 외식/창업 메뉴 개발이나 컨설팅 등을 꾸준히 하고 있는 중에 만난 일이 영화, 드라마 속 음식(식사/연회 등) 장면의 메뉴, 차림, 디스플레이 등을 기획하고 만들어내는 일이었다.

영화·드라마 ‘푸드 디렉팅’으로 개척한 신세계

 


처음 시작은 기관 홍보영상물과 웹드라마였다. 여기 들어갈 음식 장면, 메뉴를 만들어주다가 영화 ‘더 킹’을 맡게 됐다. 음식이 들어가는 장면의 기획과 진행. 처음 맡게 돼 하는 일이지만, 단순히 음식, 메뉴, 먹는 게 아니라 어떤 메시지를 줄 것인가에 초점을 맞췄다.

“감독의 의도는, 영화 속 각각의 캐릭터가 뭘 먹느냐가 곧 그 사람의 성격을 보여줬으면 하는 것이었어요. 캐릭터의 성격에 따라 예컨대 야망에 넘치는 주인공 정우성 배우의 경우 야생적으로 보일 수 있게 피가 뚝뚝 떨어지는 스테이크를 먹는데, 안심보다는 등심, 이것보다는 티본스테이크가 더 와일드하게 보일 것 같았어요. 그릇, 주변 분위기, 나이프 하나도 예쁜 모양이 아닌 것으로 준비했고요.”

시나리오에 ‘상위 1퍼센트가 더티하게 노는 파티, 화려하고 퇴폐적인 파티’ 뭐 이런 식으로 한 줄 써 있다면 이걸 보는 사람들이 더욱 강렬하게 느낄 수 있도록 시각화하기 위한 식기, 요리메뉴, 자리배치 등 전체적인 푸드 디렉팅 작업이다. 이게 너무 재미있었다.

“고기를 구워도 욕망, 야성이 잘 드러날 수 있게, 고기가 잘 다듬어져 있는 게 아니라 뼈가 붙은 채로 통째로 굽는 비주얼이 맞겠다 싶어 정육점에 특별 주문을 해서 만든다든지, 얼음 모양 하나도 장면과 어울리게, 그렇게 하나하나를 디테일하게 잡아가는 과정이에요. 보는 분들은 그냥 지나칠 수도 있는 장면이지만 그렇게 세심하게 준비를 하죠.”

이런 음식 장면들 모두 이전에는 소품 담당이 다 알아서 준비했다면, 이제는 전문 분야로 인식돼 점점 푸드 디렉터들이 참여하는 추세다. 그리고 국내에 많지 않은 전문가 중 한 사람이 바로 한희원 대표다. 영화 ‘더 킹’에 이어 ‘상류사회’, 그리고 드라마 ‘기름진 멜로’ 푸드 디렉팅도 담당했다. 아예 드라마 배경이 중식당, 요리가 전면에 나서는 드라마였다.

“영화와 달리 드라마는 거의 ‘생방’ 수준이라 4개월간 매일 방송국에 출근 했어요. 죽을 뻔 했죠. 하하. 요리로 생방송을 하다니!(웃음) 이런 드라마 나오기 쉽지 않을 거예요. 제작비도 많이 들거든요.”

‘기름진 멜로’의 경우, 실제 요리를 담당하는 중식 셰프 5명과 함께 했다. 한 대표는 전체적인 기획과 함께 어떻게 하면 요리가 화면에 잘 보여질까를 고민했다. 드라마인 만큼 상상력이 가미된 메뉴도 만들어야 하는데 정통 코스를 밟은 전문 셰프들이 정석이 아닌 요리에 어려움을 느끼는 경우가 많아 대본을 구현하기 위해 한 대표의 자문이 필요해지는 것이다. 이런 상상력을 실제 메뉴에 가미해 구현, 새로운 조합으로 세상에 없는 신제품을 개발하는 것도 한희원 대표의 업무영역 중 하나다.

요리 디테일하게 잘 녹여낸 영화 만들고 싶어


 

최근 작업한 작품은 영화 ‘기방도령’과 ‘천문’이다. 두 편 다 사극으로 고증에 특히 어려움이 많았단다. 구체적 시대가 정해져있지 않던 ‘기방도령’보다 ‘조선 세종시대’로 설정된 ‘천문’은 그 시대에 맞춰야 하는데다, 의외로 조선 전기 자료가 많이 없어 특히 고증 작업이 힘들었다. 조미료도 제대로 없던 시절인데 또 비주얼은 예뻐야 하니까 역시나 상상력이 필요한 작업이었다고.

“지금은 뮤지컬영화 ‘영웅’에 집중하고 있는데, 언젠가 요리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꿈이 있어요. 좀 더 디테일하게 잘 보여줄 수 있는 작품이요. 우리나라는 역시 스토리가 중요하니까, 스토리에 요리를 잘 녹여낸 그런 영화를 만들고 싶어요. 또 하나는, 요즘 굉장히 중요한 화두인 ‘도시재생’ 관련해서 먹거리가 도시의 굉장히 중요한 부분 중 하나거든요. 좋은 식당 하나만 들어와도 사람들이 몰려오고 그 동네가 뜨기도 하잖아요. 그런 도시재생의 일환으로 요리, 외식사업 이런 것들을 기획해보고 싶어요.”

인터뷰를 마치면서 문득, 셰프의 집밥, 가정요리는 어떨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솔직히 집에서 요리할 시간이 별로 없어요. 특히 한식은 기본적으로 밑반찬도 있어야 하고. 그래서 주로 스테이크, 파스타 등 일품요리를 많이 하게 돼요. 아, 저도 냉장고 파먹기 잘해요(웃음). 응기응변에 능해져서 즉석에서 하는 요리들이요. 맘먹고 하면 프랑스식 소고기찜이라 할 수 있는 ‘베프 부르기뇽’을 맛있게 잘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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